영화 평론) 서울의 봄(넷플릭스 추천 영화) 리더쉽에 대한 평론
사실만을 기록한 역사는 짧다. 그 짧은 사실 속에 숨겨진 무궁한 이야기는 현실적으로 무의미하다. 하지만 그 속에 우리가 알아야할 이야기 그리고 숨겨진 이야기가 많이 있다. 그리고 그 역사의 현장에서 살아왔던 수많은 개인(=우주)이 있다.
1979년은 가까이에 있다. 서울의 봄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다. 얼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영화 서울의 봄은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부터 시작한다. 주인공 두광은 한치 앞을 모르는 난세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게 되었다.
영화는 두 주인공의 시선으로 흘러간다. 단순하지만 명쾌한 구도. 정의의 주인공 태신과 빌런은 두광(그의 조력자 태건) 결과는 알고 있다. 정의의 주인공은 패배한는 것일...다만 이영화는 아무도 집중하지 않았단 패배의 과정에 대해 스토리를 풀어내고 있다.
스스로 그 시절로 돌아가본다..내가 만약 군인 장교 였다면 내 나이가 40이니까 중령(대대장) 이었다면?
두 사람은 나에게 부하들에게 동료와 상관들에게 어떻해 비추어 질 것인가?
두광은 직설적이다. 남자답다. 화통하다, 한편으로 다혈질이며 니편 내편 가른다. 권력 지향적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카리스마와 통솔력이 있다. 그리고 확실한 보상으로 자기 편을 확실히 포섭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비도덕적이다. 그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형 인물. 그를 따라 쿠데타에 참여하는 것인 인생을 건 도박이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아닙니까!" 두광의 말대로 "성공하면 지금의 나로서 상상할 수 없는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요. 실패하면 모든 것을 잃는"것이다.
태신은 부드럽다. 정적이다. 하지만 확고하다. 대쪽같다. 카리스마와 통솔력도 갖추었다. 하지만 권력지향과는 거리가 멀다. 공평정대하다. 많은 부하들이 존경하겠지만..대게 이런 상사는 자기만의 확고한 친위대를 만들기는 어렵다. 도덕과 비도덕의 문제가 아니다. 지극히 현실이다.
정의의 주인공 태신과 빌런 두광의 승패를 가른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두광이 자기만의 친위대를 만들고 그들에게 나를 따르면 큰 이익을 줄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지극히 주관적인 평론이므로) 그리고 높으신분들의 통탄할만한 무능력과
그것은 공평하지 못하다. 나를 따른다고 해서 이익을 주고 나를 따르지 않다고 해서 처벌하는 것..말도 안되는 논리이다. 그런 조직은 없어져야 한다. 굶어죽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적인 친분은 완전 배제하고 오직 공명정대한 원칙으로는 최고의 리더로 우뚝 설 수 없다. 비통하고 억울한 일이지만 현실이 그렇다. 그래서는 악인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한다. 서울의 봄 뿐만이 아니다. 그런 사례는 알려지지 않았지 셀수 없을 정도다 모두가 살면서 수없이 느꼈을 것이다.
영화 말미 태신은 홀로 악마 들을 위해 전진한다. 영화에서 비장하게 군가 "전선을 간다"가 나온다. 슬펏다 그리고 억울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두광의 카리스마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있었다.
영화는 그렇게 많은 여운을 남기고 끝났다... 정의를 따르는 사람들은 희생했고(태신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정해인역의 특전사 장교, 이름모를 병사) 악마를 따랐던 사람에게는 부귀영화가 따라왔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나는 어떤 리더가 될 것인가.. 태신의 도덕성과 공평성에 한편으로 두광의 카리스마와 흡입력을 갖춘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나또한 그런 사람과 같이 일하고 싶기도 하고...
정의로움이 내 선택의 절대 결정 기준이 될 수 없다.. 그것은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그 시절 그 상황에 있었다면 태신을 따를 수 있었을까..?
하지만 정의가 반드시 승리하고 누구에게나 공평한 이상적인 세상이 오기를 오늘도 기대하며 나 또한 스스로 그러기를 노력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