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흔적

만약에) 삼국지의 마속이 "가정 전투"에서 승리하였다면?

삼국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역사소설이다. 물론 그 소설에서 파생되는 게임도 정말 좋아하고 필자가 삼국지를 보던 중 안타까운 장면은 많으나 그 중 유비의 빠로서 제갈량 1차 북벌 시 그의 휘하 수장 마속의 "가정에서의 패배"를 중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만약 마속이 가정에서 자만하지 않고 제갈량의 전략을 잘 수행해서 전투에서 이겼다면 그 이 후 삼국지의 역사는 어떻해 되었을까?

 

만약에? 제갈량 1차 북벌의 가정 전투에서 마속이 승리하였다면? 

 

 서기 228년, 가정 전투에서 촉한의 젊은 장수 마속이 제갈량의 명령을 철저히 따랐고, 산을 벗어나 전략적 요충지를 단단히 지켜냈다. 사마의의 예상을 벗어난 마속의 방어는 위나라 군대를 크게 혼란시켰고, 제갈량은 천수와 남안 일대에서 빠르게 세력을 확장했다.

 제갈량은 가정에서의 승리를 발판 삼아 장안을 압박하여 마침내 점령하게 된다. 장안을 잃은 위나라 조정은 크게 동요하고, 내부 권력투쟁으로 인해 사마의는 군대를 이끌고 후퇴하며 허창으로 밀려난다.

 제갈량은 촉한의 국력을 북방으로 안정적으로 확장하고 장안에서 위나라를 견제하며 전략적 이점을 확보한다. 이에 자극을 받은 동쪽의 손권 역시 장강을 건너 허창 방향으로 진군해오며 위나라는 동서 양쪽에서 압박을 받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위나라 내부는 분열되고, 사마의는 조씨 가문과의 갈등이 심화되어 결국 위나라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사마의는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해 중원에 새로운 왕조를 세우려 하지만, 촉한과 동오의 협공에 견디지 못하고 몰락한다.

 제갈량은 마침내 북방의 중심지인 낙양을 점령하고 천하통일을 향해 큰 걸음을 내딛는다. 촉한은 북벌의 성공으로 천하를 거의 장악하게 되며, 제갈량은 유비의 유지를 받들어 한나라 부흥의 꿈을 현실로 이루어간다.

이제 중국은 마속의 현명한 결정으로 역사의 물길이 달라진 세계를 맞이하게 된다.

 

 물론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좋은 결과 속 나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만 "가정의 전투"는 삼국지와 그 이후 중국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작지만 큰 전투였으리라!

 

P.S 읍참마속이라는 사자성어도 사라졌을까?

 

읍참마속이란? 

'읍참마속(泣斬馬謖)'은 울면서 마속을 베다라는 뜻으로, 제갈량의 유명한 일화 중 하나입니다.

📌 배경과 의미

제갈량이 제1차 북벌(228년) 당시, 중요한 군사 요충지였던 **가정(街亭)**을 지키도록 신임하는 장수인 마속에게 맡겼습니다.
하지만 마속은 제갈량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독단적으로 높은 산에 진영을 세우는 실수를 범했고, 결국 위나라 장수 장합에게 패배하여 중요한 전략 거점을 잃게 됩니다.

📌 사건의 진행과 결과

  • 마속의 패배로 제갈량의 북벌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촉한군은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패배 이후, 제갈량은 법의 엄정함을 보여 군기(軍紀)를 바로 세우고, 군 전체에 경각심을 주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평소 아끼던 마속을 처형했습니다.
  • 당시 사람들은 마속의 뛰어난 재능을 알았기 때문에 제갈량이 처형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 역사적 의의와 평가

'읍참마속'은 조직의 규율과 법치주의를 강조할 때 자주 인용되는 고사입니다.
개인적인 감정과 애정을 버리고 조직 전체의 규율을 유지하려는 지도자의 결단력을 상징하는 표현이 되었습니다.

제갈량 개인으로서는 매우 슬프고 괴로운 결정이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그의 공정한 인사관리와 군율 유지가 역사상 높게 평가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